
- 서울 동대문구 숭인중학교 고경애 국어교사가 16일 오후 1학년 교실에서 언어의 역사성을 설명한 뒤 특정 언어와 관련된 직업을 찾아보도록 하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자, 지금부터 외모가 중요한 직업과 실력이 중요한 직업을 친구들과 상의해 적어 넣으세요.”
1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숭인중 1학년 1반 교실. 고경애(45) 국어 교사는 ‘미인’이 과거에는 재주와 덕행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다 최근 외모가 예쁜 사람이라는 뜻으로 변한 것처럼 언어가 역사성을 갖는다고 설명한 뒤 이 같은 조별 과제를 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상의해 직업들을 적어 넣기 시작했다. 외모가 중요한 직업으로 연예인, 모델, 레이싱걸, 배우 등이, 실력이 중요한 직업에 외교관, 과학자,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등 5분 만에 수십 개의 직업이 빼곡히 종이를 메웠다. 고 교사는 다양한 미래의 기술과 직업군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뒤 “미인의 기준이 시간이 지나 변했듯 미래에 다양한 직업들이 생기고 바뀔 것”이라며 “여러분들이 직업을 가질 때 걸맞은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연구학교로 지정된 숭인중의 수업 모습이다. 3월부터 50일간 서울시내 11개 연구학교에서 시행된 진로탐색 집중학년제는 중1 학생들에게 진로 직업 교육을 강화하는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자유학기제의 파일럿 프로그램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숭인중 1학년 김수아(13) 양은 “매주 금요일마다 자습시간에 희망직업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내 희망직업으로 김난도 교수와 같은 교수가 되겠다고 발표하면서 스스로 꿈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황유진 연희중 교사는 “진로 탐색은 당장 성과가 나오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장래에 직업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진로탐색 집중학년제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과목과 연계한 진로교육은 교습법 등이 준비되지 않아 적성계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다른 연구학교의 A 교사는 “중간고사를 보지 않는 것 빼고는 종전 수업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체육시간엔 운동선수에 대해 언급하는 식의 틀에 박힌 수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숭인중 강유나(23) 영어교사도 “진로와 영어 교과를 어떻게 연계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며 “직업 관련 단어들을 소개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강 교사는 학생들의 영문법과 단어 수준이 올라가면 자신의 진로직업에 관해 영어로 표현하게 하는 등 다양한 연계수업 과정을 계획 중이다.
학부모 B씨는 “학원에서 아이들 중간고사 준비를 시키는데 내 아이는 시험을 보지 않아 뒤처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며 또 다른 걱정을 했다. 집중학년제를 실시하는 학교는 중간고사를 보지 않고 수행평가로 평가를 대체한다.
서울시교육청은 교과 연계 진로수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사들을 위해 교과목별로 연수를 실시하고 원격 연수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해 보급하는 등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 중이다.